이름: �** 날짜: 2023-07-18 09:48:58 코멘트: 5 코멘트: 다랑쉬굴은 4·3사건 당시인 1948년 12월 18일, 하도리, 종달리 주민 11명이 피신해 살다가 굴이 발각되어 집단희생 당한 곳이다. 이 날 군경민 합동 토벌대는 다랑쉬오름 일대를 수색하다가 이 굴을 발견했다. 토벌대는 수류탄 등을 굴속에 던지며 나올 것을 종용했으나, 나가도 죽을 것을 우려한 주민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토벌대는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었고 굴 입구를 봉쇄했고, 굴 속의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되어 하나 둘 죽어갔다.한 때 이들과 같이 다랑쉬굴에 은신해 있었던 채정옥(남, 1923년생) 씨는 사건 발생 다음 날 굴속에 들어가 흩어진 시신들을 나란히 눕혔다. 굴 안에는 그때까지도 연기가 가득차 있었다. 희생자들은 고통을 참지 못한 듯 돌틈이나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죽어 있었고 코나 귀로 피가 나 있는 시신도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이름: �* 날짜: 2023-04-02 20:28:26 코멘트: 5 코멘트: 진입하기 전 가능하다면 대로(좌회전이던 우회전이던 도로가 끊기는 지점)에 차량 간이주차하고 걸어서 들어가시길 추천드립니다.차체 높은 suv차량 외에는 걸어서 가세요.비오는날 차 빠지고 돌에 걸려서 언더커버 찢어지고 난리네요..
이름: �** (****** 날짜: 2023-03-05 14:00:40 코멘트: 5 코멘트: 부끄럽고 가슴아픈 우리의 과거입니다. 제주는 가는곳마다.아름다운 자연이있지만 또 가슴시린 과거가 공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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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G** V***** 날짜: 2022-09-14 07:08:04 코멘트: 5 코멘트: 역사의 참혹한 현장엔 이념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서글픈 잎파리만이 무성할 뿐입니다.
이름: l***** v****** 날짜: 2022-06-08 04:47:07 코멘트: 4 코멘트: 우리의 그날이 당신들의 존엄이기를희망이기를. 평화이기를 바란다.당신들은 우리가 그토록 찾던 봄이다그대.그러니 더 이상 슬퍼하지 말기를~~~~~ 돌에 새겨진 글귀 중에서
이름: �* 날짜: 2022-04-17 08:33:44 코멘트: 5 코멘트: 생자 이생진 시인께서 11명의 영혼을 위해 詩魂祭를 4월 셋째주 토요일 스무 해 넘어 휘파람새 소리 연주로 지내는 뜻깊은 장소입니다.
이름: j****** c*** 날짜: 2022-03-03 13:37:48 코멘트: 5 코멘트: 가는길이 공사중이라 진입이 힘듭니다. 하지만 꼭 갈만한 곳이네요
이름: �** 날짜: 2021-07-17 03:32:43 코멘트: 4 코멘트: 무성하게 자란 풀 때문에 굴이 어디인지 찾을 수도 없지만…
이름: �** 날짜: 2020-12-14 09:31:26 코멘트: 4 코멘트: 비극의 역사를 가진 장소입니다 제주 4.3을 기억하고 추모할수 있는 장소입니다 다만 찾기가 힘들고 관리가 잘안되는듯하네요 좀더 많이 찾아오고 배울수있는 곳이되길
이름: s*** p*** 날짜: 2020-10-28 03:08:00 코멘트: 5 코멘트: 찾기가 꽤 힘든 위치에 있습니다. 길 입구까지는 차를 가지고 가시는걸 추천합니다.
이름: �**
날짜: 2023-07-18 09: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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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다랑쉬굴은 4·3사건 당시인 1948년 12월 18일, 하도리, 종달리 주민 11명이 피신해 살다가 굴이 발각되어 집단희생 당한 곳이다. 이 날 군경민 합동 토벌대는 다랑쉬오름 일대를 수색하다가 이 굴을 발견했다. 토벌대는 수류탄 등을 굴속에 던지며 나올 것을 종용했으나, 나가도 죽을 것을 우려한 주민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토벌대는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었고 굴 입구를 봉쇄했고, 굴 속의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되어 하나 둘 죽어갔다.한 때 이들과 같이 다랑쉬굴에 은신해 있었던 채정옥(남, 1923년생) 씨는 사건 발생 다음 날 굴속에 들어가 흩어진 시신들을 나란히 눕혔다. 굴 안에는 그때까지도 연기가 가득차 있었다. 희생자들은 고통을 참지 못한 듯 돌틈이나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죽어 있었고 코나 귀로 피가 나 있는 시신도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