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S** K** K** 날짜: 2018-06-13 12:55:42 코멘트: 5 코멘트: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 산47번지에 위치하였다. 양촌마을에 위치한 오달제 선생은 모현면의 자랑거리중 하나이다.오달제(1909~1637)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 3학사의 한분으로 자는 계회, 호는 추담, 본관은 해주, 윤해의 아들이다. 인조 12년 별시문과에 장원, 전적.병조좌랑.정언.지평.수찬 등을 거쳐 인조 14년(1636) 부교리가 되었다. 이때 후금과의 사신 교환에 적극 반대하여 주화파의 최명길을 탄핵했고,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에 들어가 청나라와의 화의에 반대, 주전론을 주장했다. 화의성립 후 적진에 송치되어 적장 용골대의 심문에 굽하지 않아 다시 심양으로 이송, 그곳에서 홍익한.윤집과 함께 살해되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렬이다. 저서로는 충렬공유고를 남겼다. 묘는 남씨 부인과 쌍분을 이루었고, 묘 앞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 그리고 좌우에는 동자문인석, 망주석, 문인석 등의 석물이 있다.
이름: S** K** K**
날짜: 2018-06-13 12: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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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 산47번지에 위치하였다. 양촌마을에 위치한 오달제 선생은 모현면의 자랑거리중 하나이다.오달제(1909~1637)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 3학사의 한분으로 자는 계회, 호는 추담, 본관은 해주, 윤해의 아들이다. 인조 12년 별시문과에 장원, 전적.병조좌랑.정언.지평.수찬 등을 거쳐 인조 14년(1636) 부교리가 되었다. 이때 후금과의 사신 교환에 적극 반대하여 주화파의 최명길을 탄핵했고,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에 들어가 청나라와의 화의에 반대, 주전론을 주장했다. 화의성립 후 적진에 송치되어 적장 용골대의 심문에 굽하지 않아 다시 심양으로 이송, 그곳에서 홍익한.윤집과 함께 살해되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렬이다. 저서로는 충렬공유고를 남겼다. 묘는 남씨 부인과 쌍분을 이루었고, 묘 앞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 그리고 좌우에는 동자문인석, 망주석, 문인석 등의 석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