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선사(구.송정신사)

category: 역사적 명소
address: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공원로 8-23
Phone: +82 62-942-3260
services: 접근성: 휠체어 이용 가능 출입구, 휠체어 이용가능 주차장,

site: https://blog.naver.com/huhasim/222159878582
rayting: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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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날짜: 2023-10-03 17:15:55
코멘트: 5
코멘트: 2022년 추석에 광주 송정공원에 있는 금선사(金仙寺)라는 작은 절에 다녀왔다. 금선사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송정신사(松汀神社)의 배전(拝殿), 즉 참배용 건물을 대웅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신사 유적이다.광주신사가 있던 광주공원에도 다녀왔다. 광주공원 안에 있는 시민회관은 어린시절 어린이 극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광주공원 옆 실내체육관 길은 내 인생 가장 따뜻한 기억이 서린 곳인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송정신사는 여러 번 고치기는 했지만, 신사의 골격, 내부 구조, 분위기는 그대로 남아 있고, 신사의 사무소 건물도 그 앞에 남아 금선사 사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배전 앞 참계의 좌우에 봉등(奉燈)이라 각인된 석등도 여전히 남아 있다.배전 너머에 있었을 신전과 신사 입구에 횃대처럼 서 있는 도리이(鳥居), 제사 음식을 준비하던 신찬소는 해방과 함께 파괴되었을 것이다.신사 앞의 참계(參階), 즉 돌계단도 일부 남아 있고, 도리이에서 배전으로 이어졌을 참도(參道), 즉 참배의 길도 흔적이 남아 있다. 참도가 시작되는 곳, 즉 송정도서관 쪽에 나무아미타불이라 적힌 돌탑이 하나 서 있는데, 이것은 본래 황국신민서사의 탑이었다 한다. 또는 “황국신민서사의 기둥(柱)”이 아니었을까 싶다.신사는 신성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돌계단, 높이 솟은 나무, 숲 속에 안치된 건물 등의 구조적 배치에 매우 신경을 쓴다. 신사의 성스러움을 만들어내기 위해 신비탈을 깎아 돌계단을 깔고, 나무를 심고, 선전 건물 자재를 운반하고, 매주 빗자루를 들고 신사 경내를 쓸었을 어린 조선인 학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씁쓸해진다.송정신사는 다른 점에서 매우 독특한 신사였다. 송정신사는 1922년 11월 25일에 광주군 송정면에 세운 신명신사(神明神祠)였다. ‘신명’이라는 것은 일본의 시조 신인 아마테라스를 모셨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는 부분인데 神社(신사)가 아니라 神祠(신사)라고 적힌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神社(신사)는 신을 공경하고 조상을 숭배하기 위해 황실, 국가, 행정기관 등에서 경비를 지원받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전국에 설치된 神社는 누적 약 80개 정도(81~82개)였다.神祠는 지방민이 자발적으로 세운 “소형 신사”로 1917년 3월에 이 만들어지면서 그 이전의 세운 신사를 포함하여 본격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神祠는 神社의 공식 질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1937년 기록에 의하면 전국의 神祠는 총 322개였다.그러나 1939년부터 일제는 각 면(面)에 하나의 神祠(신사), 즉 소형 신사를 설치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집중적으로 神祠 설치를 강제한다. 소위 “1면(面) 1사(祠)” 정책이다. 그 결과 1930년에서 1944년까지 900개 이상의 神祠가 전국에 설치되었다. 그리고 1936년경부터는 아예 神祠를 최종적으로 神社로 완성해간다는 계획하에 神祠 설립 조건을 까다롭게 한다.그러나 神祠가 神社로 발전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1939년 8월 15일에 여수신사가 神祠에서 神社로 승격한 사례가 하나 있다. 그런데 송정신사도 神祠가 神社로 승격한 매우 드문 사례였다. 일제강점기가 지속했다면 많은 神祠가 神社로 발전해 갔을 것이다.원래 송정신사는 1922년에 지방민이 세운 소형 신사에 불과했다. 이름도 松汀神社가 아니라 松汀神祠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짜 궁금해야 할 것은 언제 松汀神祠가 松汀神社가 되었는가 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일제강점기 관보 기록을 찾아보니, 1941년 4월 17일에 전라남도 광주군 송정읍의 神祠는 숭경자 총대표인 오쓰카 요헤이(大塚與平) 외 13명이 서류를 접수하여 폐지된다. 오쓰카 요헤이는 송정읍에서 금봉금융조합(金鳳金融組合)을 운영한 일본인이었다.그런데 같은 날, 즉 1941년 4월 17일에 오쓰카 요헤이 외 13명의 출원으로 송정읍에 松汀神社(송정신사)가 창립된다. 이때부터 민간의 松汀神祠는 공적인 松汀神社가 되어 신사의 질서 속에 편입된 것이다.송정신사가 세워진 것은 1922년이다. 그런데 1934년 12월이 되면 기존 건물이 부패하고 낡았다는 이유로 지방민의 기부를 받아 공사비 4천 원을 투자하여 신전을 새로 지을 계획이 세워지고 당국에 허가를 요청한다. 신전은 송정리 공업실수(實修)학교, 즉 실업학교 학생들이 지을 예정이었다.당시 기록을 보면 1922년에 지은 신사는 신전, 배전, 사무소가 허름하거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형태였던 것 같다. 신사 개축 계획은 이미 1931년 11월 무렵부터 숭경자 총대표인 오쓰카 요헤이에 의해 추진되고 있었다.1934년 10월부터 신축 공사가 구체화되었고, 인가를 받고 기부금을 받아 12월 말에 이미 예정 목표액을 모급했다. 다나카 이와지로(田中岩次郞) 등 3명이 건축위원으로 선정된다. 신전 공사는 송정공립공업실수학교에서, 배전과 사무소는 히라오카 토요사부로(平岡豊三郞)가 맡아서 건축했다.그리하여 1935년 4월 17일 춘계예제(春季例祭)에 맞추어 송정신사(松汀神祠)의 낙성축하제가 거행된다. 공립실수학교 생도, 그리고 소학교와 보통학교 아이들이 양손에 국기를 들고 송정역 앞 광장에 집합하고, 오전 9시 반에 출발하여 9시 50분에 송정신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재향군인과 소방조(消防組) 등 1천 여 명이 정렬하여 10시부터 제전을 거행했다.그리고 오전 11시부터는 충혼비 앞에 정렬하여 사토(佐藤) 신관의 주재로 청발식(淸拔式)을 거행했다. 황국신민의 서사탑이 이 충혼탑은 아니었을까? 청발식은 정화의례의 일종인 대불식(大祓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세토(瀨戶) 재향군인 분회장의 축사 후에 식이 끝났다.그 후 축하 회장으로 이동하여 착석하여 실업회장(實業會長) 마쓰이 요시노스케(松井芳之助)가 경과 보고를 하고, 광주군수인 미네사키 시게오(嶺崎重雄)의 축사가 끝난 후에 연회가 시작되었다. 미네사키 시게오는 1912년에 조선에 건너와 여수군수와 광주군수를 역임한 인물이다. 그러고 나서 기생들의 술접대가 이어졌고, 오후 2시에 모든 일정이 끝났다. 그 날은 오후에 날이 맑았기 때문에 근처에서 참배자 2천여 명이 송정신사에서 참배했다고 한다.아마도 금선사의 대웅전 앞에 있는 안내문은 다시 작성할 필요가 있다. 송정신사가 신축된 것은 1941년이 아니라 1935년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사항에 대한 정확한 조사도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당시 학생들이 동원되어 신사를 건축했다는 사실 등도 적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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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날짜: 2023-04-16 05:44:21
코멘트: 4
코멘트: 벚꽃이 이뻐요

이름: �*
날짜: 2022-07-13 08:40:05
코멘트: 5
코멘트: 금선사, 일제신사였던 곳. 지금은 절이 들어서있다. 계단, 석등, 건물외관에서 일제의 느낌이 그대로 묻어난다. 다크투어리즘에 적격인 곳.바로 맞은편 송정 도서관 길에는 일제식충혼비, 의병장 이기손장군 의적비와 주차차량이 뒤엉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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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날짜: 2021-08-11 14:22:13
코멘트: 5
코멘트: 일본식 건축물로 대부분의 법당에 모셔진 불상의 바라보는방향이 서쪽인데 이곳 금선사에 불당은 남쪽을 바라보고 있어 흔하지 않는 곳이다

이름: g** r*** m*
날짜: 2019-08-06 01:18:30
코멘트: 4
코멘트: 광주 송정공원의 아답하고 조용한작은 사찰.일본식 건물의 흔젹이 남아있고여기저기ㅇ근대의 분위기라는점이 근대문화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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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M****** G*****
날짜: 2019-03-31 05:44:10
코멘트: 5
코멘트: 작지만 아름다운 옛 신도 사원. 약 80년 전에 심어진 원래의 벚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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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날짜: 2018-12-27 22:31:47
코멘트: 5
코멘트: 비록 사찰 건물은 작지만 신도수가 않으며 주변 경관이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