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재명석등

category: 역사적 명소
address: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38
rayting: 5
우리의 최고의 기사: 상주은모래비치 | 주전해변 | 수기해변



이름: d****** S***
날짜: 2023-05-31 06:15:15
코멘트: 5
코멘트: 얼마나 더 옮겨 다녀야 하는가그 운명 참어서 제자리를 찾아 그 불을 밝혀주시오

이름: J****** B**
날짜: 2023-02-11 12:57:47
코멘트: 5
코멘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민주평화교류원(구.전라남도청본관) 앞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등이다. 조선시대까지는 광주읍성 남문(현.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 인근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청 인근으로 옮겨졌으며, 1960년대 후반부터 현재의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석등은 돌로 만든 등의 일종으로, 주로 사찰의 불전이나 탑 앞에 세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양식의 등은 어둠을 밝히는 실용적인 용도 이외에도, 중생의 마음에 불법이 빛처럼 퍼져나간다는 신앙적인 의미, 숭배의 대상인 부처나 고승 등에 대한 등공양 의식 등과 결부되어 다수 제작되었다.삼국시대 이래 제작된 우리나라의 석등은 대체로 지대석, 하대석, 간주석, 상대석, 화사석, 옥개석, 상륜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석등 역시 같은 구성을 하고 있다. 다만, 이전 시기의 석등에 비해 장식적인 요소들이 많이 생략되었으며, 불을 피우는 화사석의 크기가 줄어든 반면, 상대석이나 간주석은 커졌다.이 석등은 현재 높이 약 3m이며, 지대석을 비롯하여 간주석이나 화사석 등이 모두 통일신라시대 이래의 8각형을 취하고 있다.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나, 상륜부의 보주는 없어졌던 것을 새로 만들어 복원하였다. 전반적인 돌 다듬기 수준은 떨어지는 편이라, 지역 내에서 활동하는 석공들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8각의 간주석에는 성수천장□□무진□오(聖壽天長□□戊辰□五)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성수천장은 국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글이며, 11세기에서 12세기 초반까지 제작된 불교 미술품에서 주로 확인된다. 따라서 이 글 속의 무진년을 단서로 할 때, 제작 시점을 대략 1028년이나 1088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제작 시점을 추정할 수 있는 명문 등의 가치를 고려, 1974년 12월 26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이후 1986년 11월 1일 광주직할시(현. 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재명석등(在銘石燈)이라는 명칭은 기록이 남겨진 석등이라는 말로, 성수천장 이하의 기록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고유명사처럼 쓰이지만, 실제 광주읍지 등의 기록은 남문 안에 글이 새겨진 석등이 하나 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