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김씨세장비

category: 기념비
address: 대한민국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산47-2
Phone: +82 61-350-5225
services: 아동: 어린이 환영,

site: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2&VdkVgwKey=31,01420000,36
rayting: 3.4



이름: �**
날짜: 2018-07-07 09:24:47
코멘트: 5
코멘트: 한번쯤은 찾아가 볼만한 장소입니다

이름: �**
날짜: 2017-11-28 04:00:00
코멘트: 4
코멘트: 1987년 1월 15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42호로 지정되었다. 영산김씨 23대손 김철(金澈)이 1919년 봄 상하이[上海]에서 입국하여 이 비문을 써놓았다고 한다. 그가 3·1운동에 참여하고 다시 상하이로 돌아간 뒤, 종중(宗中)에서 그해 10월에 이 비를 세웠다.그뒤 영광경찰서 소속의 일본인 주임과 한국인 형사가 “유조선국(有朝鮮國)…”이라는 비문이 음각된 비를 발견하여 정(釘)으로 ‘朝鮮國’ 3자를 짓이긴 뒤 파묻었다고 한다. 8·15광복 후 영산김씨 사람들은 비를 찾아 원래의 위치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지점의 위쪽 길가에 다시 세웠다.일제강점기에 민족의 자주성을 표현한 비문은, 김철이 종중의 유사 김광섭(金光燮)에게 맡겨 3·1운동 후 글자를 새겨 비를 세웠다고 하나, 김철의 필문이라는 증거는 없다. 모악리 도로변에 세워져 있으며, 비신과 가첨석(加墅石)을 갖춘 일반형 석비이다.앞면에는 세로쓰기로 ‘유조선국영산김씨세장비(有朝鮮國永山金氏世葬碑)’라고, 뒷면 하단에는 ‘기미시월일(己未十月日)’이라는 입석연대가 음각되어 있다. 여기서 기미년은 김철의 행적으로 보아 1919년을 나타낸다. 1984년에 비 옆에 이현종(李鉉淙) 찬문(撰文)의 ‘김철선생기념비(金澈先生記念碑)’를 세웠다.김철은 1887년 전라남도 함평군 신광면 구봉리에서 태어나 1915년 메이지대학교[明治大學校]를 졸업하고 1917년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1919년 1월 상하이에서 여운형 등과 신한청년당을 결성하고 서병호(徐丙浩), 선우혁(鮮于赫) 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하였다가 그해 4월 다시 상하이로 돌아가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전라도 대표 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었다.1926년 12월에는 임시정부(김구 내각)의 국무위원, 1927년 8월 이동녕 내각 때는 군무부장을 지냈다. 1932년 윤봉길 의거 후 항저우[杭州]로 옮겨 김구는 군무를 맡고 자신은 재무담당 국무위원이 되었다가, 무임소장 국무원 비서장에 피선되어 활동하던 중 급성폐렴으로 1934년 6월 29일 죽었다. 1962년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영산김씨세장비 [永山金氏世葬碑]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