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백씨 효자 정려각

category: 역사적 명소
address: 대한민국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전주객사4길 43-11
rayting: 5



이름: K**** H******
날짜: 2023-09-05 04:26:28
코멘트: 5
코멘트: 수원백씨 효자 정려각이곳 효자 성리학은 수원백씨 백행량, 백응안 부자와 백규방, 백진석의 부자 효행을 기리고자 조선왕실의 명에 의해 건립되었다.이들은 모두 문경공 휴암 백인걸의 후손이다. 백인걸은 조광조의 제자이며,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스승으로 대사간, 대사헌, 홍문관부제학을 지낸 선조 당시 청백리다.백행량, 백응안 부자는 효성이 극진했고 부모상을 당해서는 묘 옆에 굴을 만들고 묘를 지켰다. 특히 행량이 시묘살이 하던 영조 43년(1767년) 전주에 대화재로 수천호가 불탔으나 행량의 집안은 변고가 없었다고 영조실록에 전한다. 행량의 아들 응안 또한 효행이 뛰어나 전라도 관찰사(이호준)와 전주부 유생들이 정려를 건의하는 상소와 이들 부자의 효행을 기록한 상감록이 있다. 이들이 시묘살이 했던 전주 황방산에 지금도 시묘천(우물)이 있다.백규방은 어린나이에 이미 부모님 섬기는 도리를 알았고 한 번도 어버이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으며, 부친의 병환에 탕약을 손수 하는 등 지극한 병간호로 천수를 다하게 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여 행한 그의 효심에 모두가 탄복하여 전라도 관찰사 서상정과 유생들이 정려로 표창해 둘 것을 요청하는 계문을 올렸다. 헌종 대에 가선대부 호조참판 벼슬을 제수 받았다.백진석은 오위장을 지낸 무장으로 부친 규방의 효를 받아 부친의 병간호를 지성으로 했고 부친이 운명하다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여 효의 귀감을 보였다. 고종 대(한말)에 종2품 가의대부 내부협판의 벼슬을 제수 받았다. 국운이 쇠잔해 가는 시기에 진석은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의형제를 맺어 나라의 장래를 걱정했고, 흥선대원군이 집권 후 경복궁을 중건하자 거금을 희사하여 왕실의 권위를 세우는데 뜻을 같이 했다.진석의 처(여산송씨)는 효부, 열녀로 전주 향교 유림 60여인이 연서로 포장을 건의하여 효열포장을 받았다.백낙중은 할아버지 규방과 아버지 진석의 효행과 선행을 이어 실천했고, 이에 전주와 고산의 향교 유생들과 무성서원의 서생이 연명으로 포창을 건의하여 편액을 하사받았다. 이 편액은 현재 전주한옥 마을 (교동) 학인당 솟을대문에 걸려 있는데, 당시 명필 성당 김돈희의 글이다. 학인당은 전주한옥마을의 대표적 한옥으로 현재 종손이 지키고 살면서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 있다.이는 대대로 승계된 백씨 집안의 효행이 우리문화를 지켜내고자 하는 새로 민족애로 승화되어 내려온 것 효의고장 전주의 자랑이기도 하다.
PhotoPhoto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