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동래의총

category: 역사적 명소, 관광 명소
address: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제1동 282
services: 아동: 어린이 환영,

site: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2100130000&pageNo=1_1_2_0
rayting: 4.8



이름: Y****** C***
날짜: 2024-01-26 06:54:23
코멘트: 5
코멘트: 푸대접 받고 있는 이 현실에 마음이 침통합니다.죄송합니다.이 무덤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침입해 오자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과 함께 궐기하여 동래성을 지키다가 순절한 군․관․민의 유해를 거두어 모신 곳이다.1731년(영조 7)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이 동래읍성을 수축할 때, 임진왜란의 격전지였던 옛 남문터에서 전사한 많은 사람들의 유골이 포환(砲丸), 화살촉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 충절의 유해를 거두어 동래부의 남쪽에 있던 삼성대(三姓臺)의 서쪽 구릉지(내성중학교 부근)에 여섯 무덤을 만들어 안장하고, 임진전망유해지총(壬辰戰亡遺骸之塚)이라는 비를 세웠다. 비의 글은 부사 정언섭이 썼으며, 비의 높이는 103cm, 너비 45cm이다. 앞면에는 임진전망유해지총, 뒷면에는 10행으로 적은 육총(六塚)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또 국가에서는 제사 비용의 마련을 위해 제전(祭田)을 주고, 향교에 맡겨 매년 추석에 유생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순절일에는 관에서 장사(壯士)를 보내어 제사를 모시게 했다.일제시대에 토지개간으로 복천동 뒷산 영보단(永報壇 : 복천박물관) 부근으로 이장하였고, 이후 비석을 옮겨 세웠다. 1974년 아무런 연고도 없는 금강공원으로 옮겨 왔다. 지금은 성의 함락일인 음력 4월 15일 동래구에서 제향을 모시고 있다.출처: 위키백과
PhotoPhotoPhoto
PhotoPhotoPhoto
PhotoPhotoPhoto
PhotoPhotoPhoto

이름: S*** B**
날짜: 2020-01-27 05:50:13
코멘트: 5
코멘트: 東萊義塚임진왜란 때 동래에 침입한 왜군을 동래부사 송상현과 함께 싸우다 순국한 무명의 성민(城民)의 유해를 거두어 묻은 무덤으로 1731(영조 7년) 동래부사 정언섭이 조정의 허락을 얻어 퇴폐한 동래읍성을 수축할 때 임진왜란의 격전지였던 옛 남문 터에서 많은 전사자의 유골이 발견되자 만든 것이다. 충절을 지키다 순사한 이들 전사자의 유해를 거두어 처음에는 부산내성중학교 부근 동래부 남쪽 삼성대의 서쪽 언덕 위에 안장했다가 일제강점기 토지개간으로 인해 유해를 지금의 동래구 복천동 고분군이 있었던 영보단 부근으로 이장했고 1974년 지금의 위치인 금강공원 내 금정사 옆으로 옮겼다.
PhotoPhoto

이름: �**
날짜: 2019-12-10 10:56:39
코멘트: 5
코멘트: 금강공원내에 자리하고 있음
PhotoPhoto
더 많은 댓글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이름: C** C** R**
날짜: 2018-03-25 07:49:58
코멘트: 5
코멘트: 壬辰東萊義塚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몸을 던지신 분들이 잠들어 계신곳입나다.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13호 소재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157-67(온천동) 이 무덤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침입해오자 동래부사 송상현과 함께 궐기하여 동래성을 지키다가 순절한 군·관·민의 유해를 거두어 모신 곳이다. 1731년(영조 7) 동래부사 정언섭이 동래읍성을 수축할 때, 임진왜란의 격전지 였던 옛 남문터에서 전사한 많은 사람들의 유골이 포환, 화살촉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 충절의 유해를 거두어 동래부의 남쪽에 있던 삼성대의 서쪽 구릉지(내성중학교 부근)에 여섯 무덤을 만들어 안장하고, 임진전망유해지총《 )이라는 비를 세웠다. 비의 글은 부사 정언섭이 썼으며, 비의 높이는 103㎝, 넓이 450m이다. 앞면에는 임진전망유해지총, 뒷면에는 10행으로 적은 육총의 내력이 기 록되어 있다 또 국가에서는 제사 비용의 마련을 위해 제전을 주고, 향교에 맡겨 매년 추석에 유생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순절일에는 관에서 장사를 보내어 제사를 모시게 했다. 일제시대에 토지개간으로 복천동 뒷산 영보단(복천박물관 경내) 부근으로 이장 하였고, 그 후 비석을 옮겨 세웠다 1974년 아무런 연고도 없는 금강공원으로 옮겨 왔다 지금은 성의 함락일인 음력 4월 15일 동래구에서 제향를 모시고 있다.Tomb of Dongnae petriots of the myn ar CDH OI O WHO 103cm. Busan Monument No. 13 These are the graves of the soldiers who died together with the Dongnae Magis trate Song Sang-hyeon. defending the Dongnae wall-fortres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The remains of their bodies were discovered along with some broken swords and arrows near the south gate of the fortress in 1731. the seventh year o the reign of King Yeongjo(1724-76). when the Dongnae Magistrate Jeong Eon seop had been renovating the wall. The remains were buried near Samseongdae heights, but due to land reclamation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1910-45) the graves were moved to near Yeongbodan altar on a hill behind Bokcheondong They were again moved to the present site in 1974. A memorial service is held here annually on the 15th day of April of the lunar calendar, the day the fortress fell under the Japanese
PhotoPhotoPhoto
PhotoPhotoPhoto
PhotoPhotoPhoto
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