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왕릉
이름: �**
날짜: 2023-05-29 10:47:27
코멘트: 5
코멘트: 한적하니 좋아요
이름: �**
날짜: 2023-03-05 05:45:39
코멘트: 4
코멘트: 다년간 찿아 보았지만,안내 표지판이 적소에 있지않아 찿지를 못해,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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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
날짜: 2023-02-02 13:26:27
코멘트: 5
코멘트: 십이지신상의 머리들은 다 어딜갔는지! 훼손된것이 아쉽읍니다.
이름: �**
날짜: 2022-05-13 12: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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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성덕왕의 능으로, 무덤이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옆에는 효소왕의 능이라고 전해지는 무덤이 함께 있습니다.
이름: J* B
날짜: 2022-03-30 22: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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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성덕왕릉의 둘레돌 안에는 십이지신상이 모가지는 사라진 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보통 십이지신석으로 조각된 형태가 많은데 특이합니다. 그 옆의 효소왕릉은 아무래도 피장자가 효소왕이 아닌 듯합니다.
이름: G***** �******* Y***
날짜: 2022-02-26 05: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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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진입로로 가는 것 보다 영상박물관 주차장에 주차하고 철길 건너 가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효소왕릉을 함께 볼 수 있다.
이름: �**
날짜: 2022-02-02 13:33:20
코멘트: 5
코멘트: 영상박물관에서 내려 뒤쪽길로 따라 걸어들어오면 금방이에요
이름: J** L**
날짜: 2021-07-02 03:32:00
코멘트: 5
코멘트: 신라 전성기의 왕인 성덕대왕릉은 규모가 잘 짜여진 왕릉으로 신라 왕릉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능입니다
이름: B****** C*** (******
날짜: 2021-04-16 00: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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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대중교통으로 이곳까지 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충분하다면 남천강의 풍경을 감상하며 자전거를 탈 수도 있다. 특히 일몰이 아름답습니다. 무덤은 12명의 수호자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없습니다. 이유가 궁금하세요?
이름: �**
날짜: 2020-09-23 04: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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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너무좋습니다 꼭 가보세요
이름: J** B**
날짜: 2019-09-13 02:30:47
코멘트: 4
코멘트: 성덕왕릉은 경주의 신라왕릉중에서 불국사인근의 원성왕릉 안강의 흥덕왕릉에 비해 봉분의 크기는 작지만 웅장한 귀부가 있고 12지신의 호석이 입체적으로 만들어져 왕릉을 호위하고 있는 곳입니다.무엇보다 성덕왕릉으로 가는 길은 고즈넉하여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기도 하거니와 바로 옆의 효소왕릉도 함께 찾아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이름: �**
날짜: 2019-06-21 12:14:46
코멘트: 4
코멘트: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조금 으스스 하지만 만족스러운 곳이다.
이름: �*
날짜: 2019-04-14 15:13:16
코멘트: 4
코멘트: 신문왕릉으로 알려진 왕릉 다음 단계의 왕릉일 듯12지신상의 머리가 다 잘려나감귀부는 손상이 심하지만 그 크기와 사실적이면서도 곡선을 유려하게 살릴 줄 아는 석공의 대단한 기술에서 당시 신라의 저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곳
이름: a** o*
날짜: 2018-03-12 07: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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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의 능. 선덕왕릉이 낭산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해 사적 제182호로 지정되었다. 현재의 상태는 봉토(封土) 밑에 둘레돌을 쌓은 원형의 토분(土墳)이다. 능 둘레는 73m에 이르며, 1900년 이후 후손들의 보수로 소형자연석으로 된 호석과 전면의 상석이 설치되었다.신라의 왕릉은 호석을 포함한 봉분의 외표시설을 기준으로하고 여기에 능원에 설 치된 시설, 입지 등에 의한 분류를 통하여 그 변천을 살필 수 있고, 봉분의 크기도 단락 을 지으며 축소된다. 그 가운데 봉분의 외표시설이 신라 왕릉의 변천을 살피는데 가장 민감하여 그 기준이 된다. 신라 왕릉은 지금까지 비정된 것 가운데 비교적 안정적으로 인정되는 무열왕릉을 포함한 서악동 왕릉군, 선덕여왕릉, 신문왕릉(전진평왕릉), 효소 왕릉(전신문왕릉), 흥덕왕릉에 대한 앞의 분류형식이 변화하는 양상에서 그 대략적인 변천 양상을 찾을 수 있고, 여기에 더하여 조사된 전헌강왕릉, 전민애왕릉 등과 용강동 고분, 황성동석실묘, 전신덕왕릉, 구정동방형분 등의 고고학 자료에 대한 지금까지의 편년을 통해 분류한 각 형식의 변천상을 읽어낼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신라의 왕릉은 마립간기의 대능원지구 대형분, 중고기 초기의 서악동 왕릉군, 중고기 후기의 선덕여왕릉, 중대 전기의 무열왕릉, 신문왕릉, 효소왕릉, 중대 후기의 왕릉으로 전민애왕릉(혜공왕릉?), 하대 전기의 왕릉으로 괘릉(원성왕릉), 흥덕 왕릉, 하대 중기 이후의 왕릉으로 전경덕왕릉(희강왕릉?), 전김유신묘(신무왕릉?), 전 진덕여왕릉(문성왕릉?), 구정동방형분(경문왕릉?)을 비정할 수 있다. 이외 전헌덕왕릉 을 중고기의 진평왕릉이 흥덕왕 무렵에 개축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으며, 구황동 추정 왕릉지는 하대 중후기 민애왕릉의 가능성이 높다. 또 전성덕왕릉은 그것이 왕릉이라면 혜공왕대에 개축된 성덕왕릉일 가능성이 있다.
이름: �**
날짜: 2024-03-17 12: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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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3대 성덕왕의 능. 왕릉.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만 1,174㎡. 왕릉의 규격은 밑둘레 46m, 높이 5m이다. 그 북서쪽에는 성덕왕의 형인 효소왕의 능으로 전하는 원분이 있다. 분구(墳丘)의 언저리에 높이 90㎝ 정도의 판석을 두르고 그 위에 덮개돌인 갑석(甲石)을 올렸다.